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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일까? 계속 “배고파”, “밥 줘”를 외치는 어르신께 일어난 일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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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인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어르신의 배고픔’과 관련한 다수의 상황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고함을 치시거나,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부엌을 서성이시면서 눈에 보이는 음식을 꺼내 드시는 경우가 있죠. 혹은 방금 식사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먹은 기억이 사라져서 가족들이 자신을 일부러 굶긴다고 오해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보호자님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 제법 여러 경우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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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어르신의 배고픔과 관련한 각종 상황들은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이상 식욕 증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음식을 많이 섭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배고픔을 잘못 느낄 때, 식사에 관한 적정한 때와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망각할 때, 혹은 정서적인 불안 문제로 인해 과잉 식욕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치매 환자의 배고픔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행동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의 원인이 아닌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전반적인 뇌 부위의 손상 및 기능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뇌의 핵심 부위 손상, 조절 능력의 상실은 치매 환자를 자꾸만 배고프게 만든다.

치매 환자에게서는 기억력 감소, 인지 능력의 저하, 일상에서 판단력이 약화된 모습을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치매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살펴보면 여러 부위에 손상을 입었거나 위축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손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뇌 부위마다 주어진 고유의 역할과 작동 체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외치는 어르신의 경우처럼 특정한 이상 행동들이 발생하게 되죠. 단, 사람마다 앓고 있는 치매의 유형은 다르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략적인 유추는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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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 피질(Cerebral cortex)은 뇌의 가장 바깥쪽에 덮여 있는 얇은 층으로 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입니다. 다양한 신경세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합니다. 사람의 언어, 기억, 사고, 인식과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중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해당하는 전두엽 피질은 어떤 것을 계획하고 결정하며, 지나치지 않도록 행동할 수 있게 적당히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두엽 내의 전면에 해당하는 전전두엽은 좀 더 세부적으로 복잡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관여하고, 충동적 행동을 억제하고 자제력을 보이는 자기 조절 능력을 담당하고 있죠. 이와 같은 뇌의 기능 덕분에 사람은 음식에 대한 욕구와 선택을 자신의 신체적 필요에 따라 적당히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부위가 위축되면 식사량을 스스로 절제하기 어려워지고 적당히 자제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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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저장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인 해마(hippocampus)도 손상을 입게 되면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해마는 새로운 사실이나 학습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더불어 감정과 관련된 뇌의 다른 부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적인 정보를 처리하고 스트레스와 관련된 반응을 조절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는 음식에 관한 정보와 자신이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할 수 있으며, 섭취 시 만족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해당 부위가 손상되었을 때는 자신이 언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방금 전에 식사를 한 것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억이 없으니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잘못 판단하여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죠. 또한 자신이 앞으로 어느 정도 후에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에 관한 적정한 시간대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워져서 식사에 대한 요구를 때와 상관없이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밥을 달라는 요청 시 주변에서 이를 들어주지 않거나, 밥을 먹은 기억이 없는데도 먹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만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충동적으로 격앙된 감정을 보이며 자신의 감정 표현을 절제하거나 조절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발생할 수 있죠.

 

뇌간(Brainstem)시상하부(Hypothalamus)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 둘은 신체의 각 기관에 정보를 전달하는 중심 허브 역할을 맡은 기관입니다. 뇌간은 생명 유지 기능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역할이며, 시상하부는 감각정보 처리와 의식 상태 조절에 관여하고 체온, 배고픔, 갈증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관련된 중요한 기능을 조절합니다. 식사 후에 위가 팽창하거나, 혈당 수치의 변화와 같은 신체적인 변화를 뇌간에서 감지하고 이 정보는 시상하부로 전달됩니다. 이때 시상하부는 뇌간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에너지 소비와 식욕을 조절합니다. 시상하부에 위치한 ‘섭식 중추’는 신체에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식욕을 증가시켜 음식을 찾게 하고, 음식을 섭취한 후에는 충분히 에너지 섭취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포만중추를 활성화시킵니다. 그래서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느껴 더 이상 음식을 먹고 싶지 않게 만들죠. 이런 기능들이 손상이 생기면 생체 신호를 감지하거나 전달하지 못합니다. 배가 고파야 하는데도 허기진 줄 모르고, 배가 불러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죠. 자신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고 필요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식욕 조절 기능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을 느끼는 신호를 잘못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뇌에서 특정한 부위나 여러 부위에 다발적으로 손상이 발생하여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음식에 관련한 적절한 조절이 어려워집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울 때 “배고파”로 대신 말하다.




그런데 치매 환자의 지속적인 배고픔 호소와 밥을 달라고 하는 증상들이 온전히 기억 상실이나 식욕 조절 기능의 문제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매의 병세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면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어르신은 자신의 필요나 감정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배고픔을 표현하는 것이 습관적으로 나타난다면 한 번쯤은 다른 유형의 불편함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심해봐야 하죠. 예를 들면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정확한 의사 표현을 전하지 못해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배고픔’으로 대신 알리는 것이죠. 또한 과거의 식사 시간이나 특정 음식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자주 떠오르면 배고픔을 표현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처한 감정이 식욕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는 불안, 우울증, 외로움 등의 정서적 변화를 겪기 쉽습니다. 이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신체적 느낌으로 표현할 수도 있죠. 배고프다는 말을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길 원하거나 불안정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모든 어르신께서 불편함의 정도나 욕구의 간절함에 비례하여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불편함의 정도가 작더라도 배고프다고 고함을 지르거나 울면서 강하게 표현하실 수도 있습니다. 반면 과거에 이루어졌던 식사 시간 및 습관이나 특정 음식에 대한 좋은 기억들로 인해 배고픔을 자주 표현하는 행동을 보이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종합하면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배고픔은 실제 배고픈 것보다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써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다양한 인지적, 심리적, 의사소통적 어려움의 복합적인 결과로써 배고프지 않아야 하는데도 배고프다고 착각하게 되거나, 배고프다는 표현을 감정표현으로서 활용하고 계신 거죠.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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